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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민주주의’의 세계사적 등장
작년 연말에 이재명 대통령의 외신기자회견 자리에서, 사전 조율이 없었던 문답시간에 한 외신기자(ABC 서울지국)가 뼈있는 질문을 했다. “요사이 K라는 글자로 시작되는 많은 한국적 현상 가운데 K-Democracy라는 말도 있는데. 무엇이 독특하길래 K-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요지였다. 이 대통령은 “그 말은 내가 쓰기 시작했는데, 한국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직접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라고 망설임 없이 답변했다. 이에 앞서 2025년 10월 CNN과의 인터뷰에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대함이 전 세계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까지 언명한 바 있었다. 아마도 12.3 내란과 이를 막아낸 시민들의 위대함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대통령의 확신에서 나온 발언일 것이다. 또한 외신들의 질문 배경에는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에 대한 경의와 찬사도 읽을 수 있었다.
21세기 들어 서구의 민주주의는 더 이상 자명한 정치 체제가 아닌 것이 되었다. 냉전 종식 이후 확산되었던 ‘민주주의의 보편적 승리’라는 서사는 점차 힘을 잃고 있으며, 오히려 근자에 들어서는 민주주의의 후퇴, 권위주의의 재부상, 포퓰리즘 정치의 확산 등이 커다란 정치적 관심사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존의 서구 대의민주주의 모델의 한계에 대한 비판이 증대되고 있다. 이렇듯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은 정치적 대표성의 위기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시도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의 민주주의, 이른바 ‘K-민주주의’는 반복되는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재구성해 오면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K-민주주의가 단순한 성공 사례를 넘어 민주주의의 ‘세계적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각 사회의 역사적·문화적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K-민주주의의 보편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 서구 민주주의의 구조적 한계를 살펴보고, 또한 한국 민주주의의 독특성을 역사적 관점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2. 서구 민주주의의 태생적 한계와 당혹스러운 현대 민주주의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하면 당연히 서구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기고 있고, 특히 영국과 프랑스에서 시민혁명을 통하여 역사적으로 발전된 민주주의를 모범으로 삼고 있다. 즉, 혁명이라 함은 통치 주체의 획기적 변경을 의미하는데. 그 위대성은 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또는 왕정에서 공화정으로의 역사적 변화를 수반했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새로운 정치체제의 주권자로 설계된 ‘시민’이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서구 근현대 정치제도에 있어 표준으로 작동해 왔으며, 탈식민지 시대 이후에는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가 이러한 서구 민주주의 제도를 기본으로 하여 다양한 형태의 민주정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시민’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보편적 시민 개념과는 큰 차이가 있다. ‘시민혁명’의 주체로서 ‘시민(市民)’이라 함은 ‘부루주아 bourgeois“ (당시 유럽 도시들에 거주하는 소수의 상층 경제적 실력자)를 동아시아 각국에서 번역하여 채택한 역사학적, 정치학적 용어인데, 이것이 전체 인민, 또는 도시 거주민 일반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같이 초기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던 집단은 재산과 교육을 갖춘 제한된 계층, 즉 시민계급(bourgeoisie)이었다. 따라서 서구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모든 인민 일반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체제가 아니라, 특정 계층의 정치적 권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또한 K-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로서의 ’시민혁명‘은 서구 근대 민주주의의 시발점이었던 시민혁명과는 구별되어 이해되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인민주권‘ 사상을 반영한 프랑스 공화국의 새로운 헌법은 공화국의 주권을 적극적으로 구성하는 공민(公民)의 실체를 왕정시대의 ’subject(臣民)‘를 대체하는 새로운 용어인 ’citoyen‘으로 규정했는데, 이는 영어로는 citizen, 우리 말에서는 또다시 ’시민‘으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기에 이중적인 혼동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K-민주주의의 주체로서 ‘시민’이라는 용어는 1948년 헌정체제 수립 이후 ‘공화국의 주권자’라는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물론 우리의 헌법은 ‘국민’을 주권자로 규정하고 있지만, ‘인민주권주의’에 입각한 전 세계의 민주주의를 비교 분석하기 위한 보편적 개념으로서는 ‘시민’이 보다 적절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서구 민주주의는 인민(people) 전체의 ‘일반 의지(general will)’를 반영한다는 그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그 성립 당시부터 이 원칙이 현실정치에 직접 반영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인민 전체가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없으므로 이른바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통하여 인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가들이, 그것도 투표권 자격을 갖춘 소수의 ‘시민’(프랑스 혁명후 성립된 제1공화정의 투표권자는 전 국민의 10% 정도)들에 의해 선출된 극소수의 정치가들이 운영하는 ‘의회민주주의’로써 인민의 의사를 정치에 반영한다는 대전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19세기 중반 산업혁명에 따른 계급분화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 마르크스는 대의제에 입각하여 성립된 근대 국가란 ”부루주아의 이익을 집행하는 행정기구에 불과할 뿐이다“고 설파하기까지 했다. 이같이 서구 민주주의는 소수 엘리트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19세기와 20세기를 지내오면서 서구의 여러 나라들은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선거권의 확대를 통해 시민의 범위를 넓혀 갔으며, 약탈적 제국주의의 팽창을 통해 그 과실의 상당 부분이 일반 인민들에게 향유되었다. 따라서 지난 200여년 동안 민주주의 제도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그 체제 자체를 부정할 만큼의 심각한 도전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20세기 중반까지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일정한 긴장과 조화를 함께 이루며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경제 성장, 복지국가의 확대는 시민들에게 물질적 안정과 사회적 권리를 신장시켰고, 이는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일반적 지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함께 이러한 균형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본의 이동성과 시장의 자율성이 무엇보다 강조되면서 국가의 재분배 기능은 축소되었고, 그 결과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불평등은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정치적 영향력의 불균형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그러한 경제적 성과물울 합리적으로 배분하고 있다고 믿어지던 대의민주주의 정치 시스템 자체에 대한 커다란 회의가 일고 있다.
현대 서구 사회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 그리고 포퓰리즘의 확산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시민들은 법률적, 제도적으로는 주권자이지만, 실제 정치 과정에서 효과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렵다고 느끼며 점차 정치로부터 이탈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극단적인 정치세력의 부상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를 흔들고 있다. 자본의 영향력이 정치에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정책 결정이 소수 엘리트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형식적으로는 유지되지만, 실질적으로는 ‘과두제(oligarchy)’적 성격을 띠게 된다는 심각한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현대 서구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기는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심화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시민은 형식적으로는 주권자이지만, 실제 정치 과정에서는 점점 더 주변화되고 있으며, 이는 정치적 무관심과 불신을 낳고 있다. 요약하면, 21세기 들어 민주주의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는, 민주주의의 서구적 모델의 보편성에 대한 당혹스러운 도전을 받고 있다.
3. 민중 참여의 역사와 K-민주주의
1948년 수립된 한국의 민주주의 제도는 위에서 본 서구의 대의민주주의를 전폭적으로 이식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국의 민주주의가 서구의 민주주의와 구별되는 독특성을 갖게 하는가? 이른바 ‘K-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세계적 발전 역사에 있어 하나의 새로운 유형으로 이해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타당한 해석을 제공할 때가 되었다.
K-민주주의의 형성과 발전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기준 중 하나는 ‘민중과 시민의 자발적 참여’이다. 1948년 수립된 민주적 헌정의 주권자인 ‘시민’개념이 형성되기 이전에는, 동학혁명 이래 정치적 주체성을 자각한 주체는 ‘민중’ (기미독립선언은 ”이천만 민중의 성충울 합하여“ 선언했다)이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단순히 서구에서 이식된 제도적 민주주의의 발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자발적인 민중이 역사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등장하여 국가 권력과 사회 질서를 끊임없이 재구성해 온 참여의 역사이며, 억압 속에서도 스스로를 회복해 온 시민적 실천의 축적이다.
K-민주주의의 핵심은 “민중이 일으켜 세우고 주권자 시민이 지켜낸 민주주의”라는 점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위로부터 설계된 제도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통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근대 이전 공동체적 자치 경험에서 기원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한 전통에 기반한 K-민주주의의 근대적 출발점은 ‘동학농민혁명’이었다. 이는 전통사회에서 흔히 보는 단순한 농민 반란이 아니라, 민중이 스스로 정치 질서를 구성하고자 했던 최초의 집단적 시도였다. 특히 집강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자치 실험은 국가 권력이 아닌 민중 스스로가 행정과 질서를 운영할 수 있음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는 정치적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받지 못한 상황에서 민중이 자발적으로 공공의 문제에 개입한 사례로, 이후 한국에서 민주주의적 참여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운동은 근대적 주권자 시민 개념보다는 민중의 공동체적 질서 회복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어서 1898년 기울어 가는 국권을 회복하자는 취지에서 개최된 ‘만민공동회’는 전통사회의 신분질서를 넘어선 정치 참여의 확대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종로 거리에 모닥불을 피우고 이루어졌던 토론회의 연사 중에는 당시로서는 최하층 신분이었던 백정들의 대표도 있었다. 이같이 다양한 계층이 함께 모여 국가의 방향을 논의하고 권력에 요구를 제기한 이 경험은 단지 일과성의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민중이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로 인식하기 시작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이러한 민중 자발성의 정신은 1919년 ‘3·1혁명’에서 획기적으로 폭발한다. 3·1 만세운동은 특정 계층이나 조직이 아닌 전 민중이 참여한 대중적 항쟁으로, 집단적 의사 표출을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추구한 세계사적 사례였다. 특히 비폭력적 방식으로 민중의 의지를 표출했다는 점에서 근대적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하나의 기준을 수립했다. 이의 발단은 민족 독립을 목표로 이루어진 운동이었지만,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혁명적 이정표로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운동의 귀결로서 같은 해 4월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민주공화국”을 선포함으로써 3.1 만세운동의 혁명성을 완성하였기 때문이다.
1948년 탄생한 신생 민주주의 국가는 서구에서 이식된 민주주의에 대한 제도적 미숙함과 오직 권력만을 추구하는 권위주의 정치세력의 민중에 대한 탄압이라는 이중고에 신음해왔다. 하지만 K-민주주의의 진정한 힘은 이러한 억압 속에서도 민중 참여의 역사적 전통이 그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 전통은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민주주의가 사고를 당할 때마다 어김없이 달려오는 민중이라는 구급차였다. 혹자는 이를 ‘119 민주주의’라 하는데, 이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서구의 관찰자들은 이 전통을 민주주의 회복력(resilience)이라 부르고 있다.
1960년 ‘4월혁명’은 전면적 부정선거에 맞선 시민들의 자발적 저항으로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고,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주권자로서의 시민이 직접 권력을 견제하고 교체한 첫 경험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특히 민주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체제 변화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주의의 도도한 물결은 지속적으로 급류를 만나 순탄치 못했고 민주주의 구급차는 계속 출동해야 했다.
대한민국의 헌정체제는 반복적인 군사 쿠데타로 인해 민주주의의 ‘겨울 공화국’을 인고해야만 했다. 1961년 5월의 군사정변, 1972년 10월의 유신체제, 1979년 12월의 군사권력 장악 등은 전시를 상정해 헌법이 준비한 계엄령을 민주공화국 자체에 대한 도전과 전복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미 산업사회에 접어든 한국 사회의 기층 민중으로 이루어진 민주적 시민들과, 특히 이들의 요구를 대변하던 젊은 대학생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속적인 저항을 이끌었다.
급기야 1980년 ‘부마민주봉기’와 ‘광주민주항쟁’은 시민 참여의 역사에서 또 다른 이정표가 되었다. 특히 광주 시민들은 계엄군의 가혹한 폭력에 맞서 자치 공동체를 형성하고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며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단순한 시위 참여자를 넘어, 공동체의 주체로서 성숙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K-민주주의의 윤리적 정당성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어서 1987년 6월항쟁은 이러한 전통의 역사적 결실이었다. 전국적인 시민 참여를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 민주주의 제도화를 이끌어 낸 이 사건은, 시민의 집단적 행동이 정치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명확히 입증하여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전환을 이끈 사건이다.
이후 민주주의는 제도적으로 정착되는 듯 헀지만, 한국 정치는 계속해서 시민의 호루라기를 요구했다. 2000년대 이후의 촛불집회는 새로운 형태의 참여 민주주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특히 2016~2017년의 ‘촛불항쟁’은 수백만 명의 시민이 평화적으로 거리로 나와 정치적 책임을 요구한 사례이다. 이 운동은 결국 정권 교체를 이루어 내면서, 폭력 없이 질서 있게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성숙한 시민 의식에 의한 새로운 ‘시민혁명’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또한 디지털 시대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자발적 참여라는 점에서도 새로운 특징을 가지며, 비폭력적이고 자발적인 시민 참여가 정치적 변동을 이끌 수 있음을 또한번 보여주었다.
2024~2025년의 ‘빛의 혁명’은 이러한 역사적 자산의 정당한 수확이었다. 또다시 군대를 동원한 내란의 위기 속에서도 시민들은, 특히 젊은 민주시민들은 이번에는 반짝이는 응원봉을 들고 등신불처럼 눈에 덮혀서 헌정 질서를 지켜냈고, 이를 통해 K-민주주의의 회복 능력을 세계인 앞에 여실히 입증했다. 이는 시민들의 단순한 정치적 승리라기보다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민주적 제도 그 자체보다 더 근본적인 민주주의의 토대임을 보여주는 K-민주주의의 정신이다.
4. K-민주주의의 보편성: 참여와 회복력
이처럼 동학농민혁명 이후 한국의 주요 역사적 사건들은 민중과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중심으로 전개되어왔다. 초기에는 생존과 공동체를 위한 민중의 집단적 행동이 중심이었다면, 1948년 헌정체제가 수립된 이후부터는 정치적 권리와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시민의 참여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민주주의가 단순히 제도적 수입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K-민주주의는 위로부터 주어진 제도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형성되고 반복적으로 재건된 참여의 역사이다. 민중은 단순한 피지배자가 아니라 정치의 창조자였으며, 시민은 민주주의의 최종 보루였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K-민주주의를 단순한 국가적 특수성을 넘어, 현대 민주주의의 또 다른 모델로 부상하게 만든다.
K-민주주의가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한국 민주주의는 권위주의 체제를 비교적 최근에 극복한 일종의 ‘후발 민주주의’라 할 수도 있지만, 그에 반해 시민 참여와 정치적 동원의 역동성이 매우 높다. 특히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은 비폭력적 시민 행동을 통해 정치권력을 평화적으로 교체한 사례로서, 이는 민주주의가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시민 참여를 통해 유지된다는 교훈을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세계 앞에 웅변하고 있다.
둘째, 한국은 제도적 위기에 대한 대응 능력에서도 높은 회복적 탄력성을 보였다. 평상시에는 정치적 스캔들이나 권력 남용이 발생했을 때 시민사회가 견제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가 비교적 효과적으로 작동해왔다. 비상시에는 시민적 동원을 통해 역사에 역행하는 정치구조를 결정적으로 되돌려 놓는 회복력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시민 참여 역시 K-민주주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한국은 높은 인터넷 보급률과 디지털 인프라를 바탕으로 대중 동원을 통해 시민의 정치 참여를 확대해왔다. 이는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가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요약하면, 서구 민주주의의 위기는 결국 ‘참여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면, K-민주주의의 본질은 ‘참여’와 ‘회복력’에 있다. 위기 속에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는 민주주의,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욱 성숙해지는 정치 공동체가 바로 K-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제도가 아닌 살아 있는 실천의 과정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따라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러한 시민 참여 의식을 창의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입법과 사법의 영역에서 더욱 고양된 제도적 성숙이 아직도 요구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특히 ‘시민의회(citizens’ assembly)’의 도입을 통한 현대적 직접민주주의의 실행은 초미의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K-민주주의는 세계의 민주주의를 대체할 단일한 표준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가 위기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남고 회복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역동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K-Democracy’는 시민 참여, 제도적 대응력, 디지털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며, 세계인들이 민주주의의 미래를 모색하는 데 중요한 대안적 사례라고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구급차는 반드시 온다”라는 신화는 이제 역사가 되고 있다.(공동선5월호 동시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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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기자 ( ) 다른글 보기 real5912@hanmail.net# 태그 통합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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