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청년미래포럼 박준규 대표>
정치권은 어느 정당을 막론하고 선거가 다가오거나 변화와 혁신을 이야기할 때마다 ‘청년’을 앞세운다. 청년위원회, 청년특별기구, 청년인재, 청년정치학교, 청년비례대표 등 ‘청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조직과 사업은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정작 청년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기대보다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이유는 단순하다. 청년이라는 이름은 넘쳐나지만 청년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취업은 어렵고, 주거비 부담은 커졌으며, 자산 형성과 결혼·출산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청년을 위한 조직과 행사가 아무리 많아도 삶의 변화가 체감되지 않는다면 보여주기식 정치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정치권이 여전히 청년을 이해하기보다 '청년 끌어안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비껴가는 추상적인 분석과 이미지 정치만 반복해서는 청년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청년기구가 아니라 정책을 제안하고 결정하며 책임질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이다.
정당이 청년을 포용하려 한다면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청년정치가 일반 청년의 삶과 단절된 채 일부 정치 지망생의 경력 관리나 공천 준비를 위한 무대로 전락하는 일이다. 청년이라는 이름이 사회문제 해결이 아닌 개인의 정치적 스펙을 쌓는 수단이 되는 순간, '청년'이라는 수식어의 공공성은 사라진다. 세대 막론하고 그 누구도 정치인이 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헐뜯고 올라가려는 인물은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유권자들이 판단해야 한다.
더욱이 청년을 아군과 적군으로 구분하고 정치적 성향이나 충성도를 기준으로 위촉과 임명을 반복하는 방식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줄 세우기식 청년정치는 다양한 청년의 목소리를 담아내기보다 특정 진영의 입장을 반복하는 구조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결국 청년들은 자신이 정책의 주체가 아니라 정치적 동원의 대상으로 취급받는다고 느끼게 되고, 이는 청년정치에 대한 신뢰는 물론 장기적으로 정당에 대한 공감과 지지율까지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
오늘날의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재를 이끌어 갈 중심 세대다. 인공지능과 반도체를 비롯한 기술혁명, 기후위기, 완전히 변화한 한반도 정세와 국제정세, 저출생과 고령화, 지역소멸, 고용과 주거 문제까지 대한민국이 직면한 거의 모든 변화의 중심에 청년이 있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먼저 마주하고 가장 오래 감당해야 하는 세대 역시 청년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청년을 특별한 관리 대상이나 독립된 유권자 집단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청년을 표의 숫자로 바라보면 선거 전략이 만들어지고, 국가의 구성원으로 바라보면 미래를 위한 정책이 만들어진다. 같은 청년이라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정치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진다.
청년 역시 한 사람의 국민이다. 중요한 것은 청년인가가 아니라 어떤 역량과 전문성, 공공성을 갖추었는가이다. 청년에게 기회를 주는 것과 검증 없이 자리를 나누어 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진정한 청년정치는 나이를 특혜의 근거로 삼는 것이 아니라 역량 있는 청년이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국가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한 통로를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청년'이라는 이름이 붙은 또 하나의 조직이나 행사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정책, 능력과 책임을 바탕으로 국가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자신을 표가 아닌 동등한 국민으로 존중하는 정치다.
청년은 정치의 장식품도, 선거를 위한 표밭도 아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함께 책임질 국민이다. 정치가 '청년'이라는 수식어를 앞세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청년을 국가 운영의 동등한 주체로 인정할 때, 비로소 청년정치는 보여주기에서 신뢰로, 동원에서 참여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실질적, 실용적, 합리적으로 실천하는 정당의 청년층 지지율이 상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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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 ) 다른글 보기 pjk77@naver.com# 태그 통합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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