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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6-07-27 21:28:54
삼전닉스의 위력과 한국사회의 과제-박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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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합뉴스

서구사회가 근대적인 삶의 질서로 변화된 주된 계기는 산업혁명을 통한 자본주의 로의 이행이었다. 세계가 여전히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있다는 점에서 현재는 근대와 연속적이다.

자본주의가 고도성장으로 치닫던 19세기 중엽,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소년 노동자가 되어야만 했던 찰스 디킨스는 각고의 노력 끝에 대작가로 성공하게 된다. 그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는 19세기 자본주의 세계의 가장 거대한 도시 런던 뒷골목에서, 불행의 늪에 빠져 허덕이는 하층민의 삶을 비추고 있다. 국가는 점점 경제성장을 통한 번영으로 내달리고 있지만, 번성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삶이 개선되리라는 기대를 전혀 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그 사회는 더 큰 절망으로 다가온다.

19세기 영국의 경제적인 번영에 부합하는 강력한 가치관은 공리주의였다. 공리주의는 말한다. 영국은 앞으로도 더 크고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다. 세계 최고의 나라에 산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된 일이냐. 이렇게 공리주의의 효용(utility) 원리는 국가경제 성장을 뜻하는 최대행복을 의심할 수 없는 최선의 가치라고 설파한다. 하지만 최대행복은 모두의 행복을 평등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고통 속에 신음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더더욱 행복한 다수의 대열에 끼도록 발버둥 쳐야 한다.

문학의 힘으로 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디킨스의 시선은 상품사회 속에서 최신의 유행과 최고의 사치품을 향유하는 데 관심을 둔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들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행복한 사회가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려는, 어둠 속에서 삶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이야기가 디킨스의 문학에서 대조된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현실 세계에서는 부자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 그저 그런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다.

디킨스가 문학의 눈으로 19세기 영국사회를 비판하는 대목은 승자독식 자본주의를 제어하지 못하고, 사회가 발전함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공리주의적 경제체제가 잘못이라고 꼬집는 데 있다. 경제성장에 기여했지만 노동자들은 저임금의 족쇄에 묶여 기업이 벌어들인 수익에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 공리주의적 사회규범의 한계를 넘어서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향한 노력은 20세기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의 정치적인 시도 외에도 롤스의 정의 이론에서도 두드러진다.

요즘 대한민국 반도체 대기업 삼전닉스는 세계적으로도 새로운 산업의 가능성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AI기업들이 한국 반도체 회사에 줄을 서서 상품을 기다리는 동안 가격이 폭등하고 전대미문의 초과이익이 생겼다. 그러나 폭증하는 세계시장에서 벌어들인 기업의 영업이익을 기업만 모두 독식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당연히 삼성 반도체노조가 이익 배분을 정당하게 요구했고, 이 요구 자체는 문제가 없다. 물론 삼성 반도체노조가 지금까지 보인 행보는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을 삼성 반도체노조의 탓으로 돌리게 된다면 비판의 대상을 잘못 설정한 것이 되고 결과적으로 보수 언론만 환영하게 될 노릇이다.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 노동자의 권익을 증진해야 할 일은 한국사회 전체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의 공통과제다.

문제는 인류의 미래 먹거리라 불리는 반도체산업 생태계 조성이 개별 기업 단위에서 조율할 정도나 규모를 넘어선다는 데 있다. 큰 변화의 시점이라면 이 기회를 한국사회 전체에 만연한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개혁할 도전적인 기회로 삼아야 한다. 반도체 기업만 이익을 독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는 배아픔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름에 대한 사회규칙에 대한 문제다.

대통령은 선거운동 과정과 취임식에서 ‘억강부약 대동세상’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소년 노동자 출신이라는 특별한 이력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대통령이 어쩌면 그의 말을 지킬 의지와 실천력을 가졌으리라 기대하게 했다. 대통령이 기업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만큼, 이익 배분의 방식과 관련해서 어떤 정치적 후속 절차를 밟아 가느냐를 지켜보아야 한다.

노동계급이 경제투쟁에만 매달리게 되면 계급이기주의에 빠지게 된다. 여전히 우리가 기대하는 노동자들의 연대는 사회 대개혁을 위한 투쟁의 무기라는 점이다. 파편화된 노동자들이 각자도생의 삶의 방식을 넘어서,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위장된 자본의 힘에 맞서, 모두가 사회의 생산력 발전에서 성취된 결과물을 평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내년에도 반도체 호황은 지속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전망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사회는 좋은 땅과 물과 전기라는 사회공동체의 공유물과 양질의 노동력을 합해 사회적 생산물을 만들어낸다. 사회적 생산과 성장을 위해, 나아가 성장을 통해서 얻게 되리라 기대하는 이익을 위해, 사람들은 훼손될 자연을 감내하고, 훼손될 공기의 위험에 공동 참여한다. 더 많이 희생한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땅과 하천의 희생도 성장을 위해 연대 책임을 자처한 사회와 모든 사람들이 함께 되갚아야 한다.

노르웨이는 잘 알려져 있듯이 유전 개발로 사회 공유자산을 형성해서 모두가 평등하게 복지를 누리고 있다. 반도체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기울일 전 사회적 노력과 희생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사회적 공유물이 공정하게 공유되도록 노조와 노동계급의 연대의 깃발이 펄럭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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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호 기자 ( ) 다른글 보기 flyingssunn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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