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연구원 오경섭 북한연구실 선임연구위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북한 간의 전략적 밀착은 단순한 전술적 거래를 넘어선 이념적, 구조적 도전으로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 붕괴를 목표로 북한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있으며, 북한은 이를 체제 생존과 전략적 영향력 확대의 기회로 삼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안보에 전례 없는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정부는 보다 능동적이고 정교한 외교·안보 전략을 요구받고 있다.
러시아와 북한은 2024년 6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하며 공식적인 군사동맹 관계를 선언했다. 이 조약에는 한쪽이 무력 공격을 당할 경우 즉각적인 군사 지원을 제공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북한은 이를 명분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무기를 지원하고, 심지어 병력까지 파병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이로써 러북 관계는 단순한 군수 협력을 넘어, 국제질서의 재편을 겨냥한 전략적 연대로 진화했다.
러시아의 입장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벼랑 끝 국면에서 북한은 값싼 군수물자와 정치적 충성도를 제공하는 실용적 파트너다. 동시에, 동북아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을 견제할 지정학적 거점으로서의 가치도 크다. 반면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첨단 무기 기술, 원유, 외화 수익을 확보하며 유엔 제재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질서를 공동의 적으로 규정하며, 다극적 국제질서 구축이라는 수정주의적 전략에 공조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전략적 밀착이 한국 안보에 미치는 중대한 영향이다. 러북은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위협 요소로 간주하고 있으며, 중러 역시 북한을 통해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자 한다. 중러와 러북의 군사협력은 한반도 유사시 북한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국제 연대의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이제 한국은 분명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강고한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특히 한일 간 과거사 문제와 감정의 골을 넘어선 전략적 협력이 요구된다. 지역 안보 위기가 현실화될 경우, 미일 양국의 적극적 개입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신뢰 기반의 한일 공조가 필수적이다.
또한 한중 및 한러 관계에 대한 전략적 환상이 아니라 현실적 인식이 요구된다. 중러는 이미 한국의 전략적 우방이 아니며, 지정학적으로 한국의 안보 위협과 마주한 행위자다. 한중·한러 관계는 국제정치의 구조적 제약 속에서 신중하게 조율되어야 하며, 본질적으로 한미동맹과의 균형이 아닌 보완적 수단으로 접근해야 한다.
오늘날의 러북 전략적 밀착은 단순한 무기 거래나 외교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규범의 붕괴, 질서의 전환, 그리고 한국 안보의 구조적 재편을 요구하는 경고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격변의 질서 속에서 동맹과 협력을 토대로 한 지혜롭고 주도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평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준비를 통해 확보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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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 기자 ( 북한전문기자 ) 다른글 보기 kppress@naver.com# 태그 통합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