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광 지역전략연구실
중국 허베이성의 해변 휴양지 베이다이허는 오랫동안 권력 원로들이 모여 정세와 인사를 논하던 은밀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곳의 풍경은 달라졌다. 양자물리학자, 인공지능 전문가, 바이오 과학자가 중국 최고 권력층과 한자리에 앉아 국가 전략을 논한다. 정치적 회합의 무대였던 바닷가가 이제는 과학기술 인재의 축제로 바뀐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연출이 아니다. 중국은 과학기술을 국가 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으며, 그 중심에 ‘사람’—즉 인재—를 놓고 있다. 베이다이허 회의에 과학자들을 대거 초청한 것은 중국이 과학기술 인재를 국가 발전의 심장부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중국의 인재 전략은 2008년 ‘천인계획’에서 본격화됐다. 고액 연봉과 연구비, 정주 지원으로 해외 과학자들을 귀국·유치한 이 프로그램은 단기간에 연구 리더를 확보하며 성과를 냈다. 하지만 국제 사회의 의심과 견제를 불러오자 2019년 ‘치밍 프로그램’으로 개편, 보다 은밀하고 맞춤형 스카우트 체계로 발전했다.
국내 인재 육성은 ‘만인계획’이 대표적이다. 청년 과학자와 혁신기업가 1만 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며 연구 생태계를 다져왔다. 더불어 ‘장강학자상’을 통해 국내 연구자들에게 명예와 실질적 혜택을 제공하며 내부 풀의 질적 향상을 꾀했다. 해외 유치와 국내 육성을 동시에 추진한 이른바 ‘이중 사다리 전략’이 중국 과학기술 발전의 토대를 만든 셈이다.
중국의 인재 전략은 산업 정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반도체, 인공지능, 바이오, 항공우주 등 핵심 산업을 육성한 ‘중국제조 2025’는 인재 부족이라는 병목을 안고 있었는데, 천인계획과 만인계획이 이를 보완했다.
그 결과 장루징(SMIC 창립자), 판젠웨이(양자통신 연구자) 같은 해외 귀국 인재가 중국의 ‘기술 굴기’를 이끌었다. 인재 정책이 산업 전략과 맞물리며 실질적 성과를 낸 것이다.
중국의 사례는 한국에 중요한 교훈을 던진다.
▲ 국가 전략과 연계된 인재 정책 – 산업·안보 전략과 연동된 범정부 차원의 인재 로드맵 마련이 필요하다.
▲ 해외와 국내를 잇는 병행 전략 – 해외 우수 과학자 귀국·협력을 유도하고, 국내 인재는 청년-중견-리더로 이어지는 성장 경로를 제도화해야 한다.
▲ 성과 중심의 차별적 보상 – 탁월한 연구자에게는 과감한 보상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고, 청년 연구자에게는 조기 연구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 사회적 위상 제고 – 장학금, 병역 혜택, 주거 지원 등 다차원적 인센티브로 이공계 진입을 촉진해야 한다.
▲ 일관된 장기 전략 –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지속 가능한 초당적 인재 육성 시스템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인재는 단순한 교육 문제를 넘어 국가 산업과 안보 전략의 핵심 수단이다. 중국은 이를 베이다이허 회의라는 상징적 무대에서 보여주었다. 이제 한국도 인재 정책을 단순한 부처별 사업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미래 전략산업의 생존 전략으로 바라봐야 한다.
지금 우리가 준비하지 않는다면, 10년 뒤 베이다이허의 과학자들과 한국 청년 연구자들의 격차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벌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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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기자 ( kppress ) 다른글 보기 kppress01@gmail.com# 태그 통합검색